마녀, 마인, 마법사, 타락한 자, 괴물.

그들을 부르는 이름은 다양합니다. 그들은 누구에게는 공포의 대상으로 불리고, 누구에게는 혐오의 대상으로 불리고, 누구에게는 한낱 허상으로 불립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 이 대륙 < 에이도데인 - Eidodein > 에는 분명히 그들이 존재하며, 우리 인간의 곁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입니다.

​

이름이 많은 만큼이나, 마녀들의 기원에 대해서도 의견이 많습니다. 오래 전 악마에게 힘을 빌려 사용하던 타락한 이들이라는 말부터, 잊혀진 신의 추종자들이라는 설, 저주받은 존재들이라는 설까지. 그러나 사람들이 모르는 진실 중의 하나는 그들의 기원은 분명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인간들에게는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삶과 죽음, 행운과 불행, 그 모든 것은 세계의 균형에 따라 조율되며, 자신의 운명에 거스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세계의 ‘마녀’들은 운명과 세계 그 바깥에 선 존재들입니다.

​

불행과 불운이 연달아 닥칠 때 보통의 사람들은 힘겨워하면서도 결국 수긍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인생이니까요. 그러나 운명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정된 인생에 대해 거부하고, 반발하고, 엇나가 몇 번이고 그 운명을 맞닥뜨린다면요? 아무리 바꾸려 해봐도 자신의 앞에 있는 ‘정해진 결말’을 직시하게 된다면요? 그 순간 인간은 세계의 축을 눈치채게 됩니다. ‘정해진 것’이 있다는 것을 눈치챈 이들은 다른 이들의 운명 역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마녀들은 이 ‘진실’을 깨닫는 것을 1단계라고 부릅니다. 모든 이들은 정해져 있으며 자신 역시 세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이들은 대체로 자신의 이성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세계는 변하지 않죠.

​

그러나 극소수의 사람들은 모든 것이 정해진 세계에서 운명을 거스르고, 부수려 듭니다. 나의 세계를 스스로 구축하려고 운명을 거부하고 배척합니다. 나는 정해진 그대로 살지 않겠다는 강렬한 욕망, 모든 것이 정해졌다는 것에서 오는 반발,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절망, 자신의 운명을 설계한 세계에 대한 분노, 배타적이고 이질적인 감정들. 세계를 적대하기 시작하면 자신의 운명에 개입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정해진 길이 아닌 다른 선택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마녀들은 이 ‘선택’을 하는 과정을 2단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하나의 사람이 이 단계에 도달할 경우, 모든 마녀는 새로이 탄생하고 있는 동료의 존재를 눈치챕니다.

​

세계의 진실을 눈치채고, 세계가 정한 길을 벗어났다면 그것으로 끝인 걸까요? 세계는 자신을 적대하는 이들을 가만히 두지 않고, 제거하려 듭니다. 사람들의 욕구와 욕망을 충동질하는 방식으로. “남들과 다른 이”를 “마녀”라 규정하고 “사냥”하여 “제거”하는 것은 모두 그 세계가 이끌어낸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 이들은 다시 한 번 선택을 강요받게 됩니다. 죽음과 맞닿는 방식으로. 그리고 이 순간 대부분의 “마녀”들은 세계와 자신의 연결을 깨트리고 끊어냅니다. 세계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의 의지로 세상을 바라보며 선택하는 삶을 사는 것. 그리해서 나의 세계를 가지게 되는 것. 마녀들은 이 ‘파경’ 하는 과정을 3단계라고 부르며, 새로 태어난 마녀는 자신을 지켜보던 다른 마녀들을 인식하고 그들과 감각을 공유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세계를 가진 마녀는 자신만의 능력과 세계에 맞는 이름 즉 ‘이명’을 가지게 되며 동시에 힘이 소멸하기 전까지 영생을 누립니다.

​

이것이 마녀의 기원이며, 근원입니다. 고로 마녀란 절망을 먹고 개화합니다. 세계와 인간은 자신들과 다른 것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배척하는 속성이 있기에, 그들과 우리 인간이 섞이지 못하는 것은 필연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마녀들이 숲에 모여 따로 살아가는 것이 모두를 위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오늘은 20여년 만에 붉은 달이 뜨는 날. 잊혀진 신의 수하들이 모인다는 대륙의 불길한 날 중 하나입니다. 이런 날이면 꼭, 마녀들의 숲이 불길하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붉은 달이 뜨는 날 숲에 들어간 이들은 영영 나오지 못했다던가요. 부모들은 철없는 아이들을 단단히 교육시키고, 노점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은 땅거미가 지기 전 발을 놀려 집으로 돌아갑니다. 소란이 거짓말처럼 그친 밤, 불그스름한 달빛이 땅 위에 내려앉습니다. 오늘 밤만큼은 포근한 집 안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우리의 말을 언제나 듣고 있거든.